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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AIR)_ 알고보면 더 재미난 나이키 이야기

by 엉클피터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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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르 : 드라마, 실화, 시대극
  • 감    독 : 벤 애플렉
  • 출    연 :  맷데이먼(소나 바카로 역), 벤 애플렉(필 나이트 역), 크리스 터커( 하워드 화이트 역)
  • 상영시간 : 112분
  • 개 봉 일 : 2023년 4월 5일

농구와 유년시절의 추억

엉클피터가 고등학교 다닐 때 농구는 유난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199X 년도에는 만화 슬램덩크가 큰 인기를 끌며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서장훈, 우지원의 연세대와 전희철, 현주엽의 고려대의 라이벌 구도 역시 그 시절 뜨거운 이슈였죠. 덕분에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도 히트를 쳤습니다(손지창의 터닝슛은 흑역사).
 
농구를 잘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교복에 에어 조단을 신고 오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또한 트렌드를 따라가는 친구들은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 시카고 불스의 경기를 보고 다음날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나이키와 에어 조단 농구화를 앞세워 마이클 조단은 1990년대 대한민국 청소년 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았죠. 그래서 엉클피터의 세대에서는 농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마이클 조던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영화 "에어"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불스에 지명된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나이키와의 계약 이후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영화는 계약 막후의 치열한 스포츠 비즈니스 세계를 나이키에서 일하는 "소니"의 눈을 통해 조명합니다.
 
영화의 평점은 전문 평론가와 다른 블로거 분들께 맡기고, ChitChat Cinema "에어" 리뷰에서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당시 스포츠 의류 업황과 마이클 조단의 개인사의 배경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1984년 마이클 조던과의 대형 계약 전후의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겠다였습니다.
 
오늘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예비 관객 여러분들이 더 재미있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여자친구, 와이프 반대로 남자친구, 남편과 함께 보러 가는 분들은 미리 설명을 해주고 가면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됩니다(찡긋)

 

 

영화 '에어'를 볼 때 유용한 배경지식 1. _ 1984년 이전의 나이키 상황

 

1984년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나이키는 이미 성공한 스포츠웨어 회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아직 절대적인 선두주자는 아니었습니다. 나이키는 1964년 필 나이트(벤 에플렉 분)와 빌 바우어만에 의해 설립된 블루리본 스포츠(BRS)로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일본 신발회사 오츠카 타이거(지금의 아식스)의 유통이 주요 사업이었습니다.
 
1971년, BRS는 자체 신발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나이키 브랜드가 탄생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그리스의 승리의 여신 나이키에서 따온 것이며, 유명한 스우시 로고는 캐롤린 데이비슨이 디자인했습니다. 나이키의 첫 번째 돌파구는 1972년 출시된 코르테즈로, 선수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러닝화였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걸쳐 나이키는 제품 라인을 확장하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중장거리 주자인 스티브 프리폰테인과 테니스 전설인 존 메켄로와 일리에 네스타세 등이 나이키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나이키는 아디다스와 컨버스와 같은 당대 굴지의 브랜드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아디다스는 1949년 독일에서 아돌프 "아디" 다슬러가 설립한 스포츠웨어 회사로, 농구, 축구, 육상 등 여러 스포츠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었습니다. 아디다스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고품질 제품으로 유명하여 나이키에게 강력한 경쟁 상대였습니다.
 
1908년 설립된 미국 신발회사 컨버스는 농구화 시장에서 선두주자였으며, 당시 유행을 선도한 '척 테일러 올 스타'를 대표 제품으로 내세웠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 농구 선수의 약 60%에서 80%가 컨버스 신발을 착용하였다고 추정됩니다. NBA 전설인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이 컨버스의 대표 인물이었으며, 이는 컨버스가 농구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존 폴 빈센틴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분)가 나이키에 합류한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그는 대학 코치들과 신발 거래를 맺고 미래의 NBA 스타들과 나이키 브랜드를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나이키 브랜드의 농구 분야에서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바카로와 나이키 사이의 관계는 1990년대 초에 끝났으며, 이후 그는 아디다스와 리복에서 일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나이키의 농구화 판매는 아디다스와 컨버스에 뒤처져 있었고, 회사는 농구 부분 라인업의 대표 얼굴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나이키는 북캐롤라이나 대학의 유망한 농구 선수였던 마이클 조던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탁해 5년간 총 250만 달러의 농구사업 부분 대표 모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파트너십은 에어 조던 브랜드를 창출하게 되는데, 이 브랜드는 농구화 및 의류라인 중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성공한 제품 라인 중 하나가 됩니다. 이로 인해 나이키는 결국 농구 시장에서 아디다스와 컨버스를 추월하게 되어 스포츠웨어 업계의 독보적인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이전 나이키 기업상황 요약

1984년 마이클 조던과 계약 전, 나이키는 이미 성공한 스포츠웨어 회사였지만 아직 절대적인 선두주자는 아니었다. 나이키는 당시 농구사업 부분 3위 기업이었으며 컨버스가 1위 아디다스가 업계 2위였다. 그러나 1984년에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에어 조던 브랜드가 등장하였고, 이로 인해 나이키는 농구 시장에서 아디다스와 컨버스를 추월하여 스포츠웨어 업계의 독보적인 선두 주자가 되었다. 이후 나이키는 컨버스를 인수하게 된다.

 

영화 '에어'를 볼 때 유용한 배경지식 2. _ 1984년 이전의 NBA 스타들과 농구화 브랜드

1984년 이전, NBA에서 활약했던 여러 선수들이 컨버스(Converse), 아디다스(Adidas), 그리고 나이키(Nike)와 같은 대표적인 스포츠 의류 브랜드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명한 선수들 중 영화에 나오는 브랜드와 계약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Converse

래리 버드 : 래리 버드는 컨버스 웨폰 모델을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음
매직 존슨 : 컨버스의 대표 모델인 컨버스 웨폰 착용했던 매직 존슨도 컨버스의 주요 대표 선수였음
줄리어스 "Dr. J" 어빙 : Dr. J는 컨버스 올스타 프로 레더 모델을 착용하며 활약했음

 
2. Adidas

카림 압둘 자바: 가장 유명한 아디다스 선수 중 한 명인 카림 압둘 자바는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착용하였으며, 후에 그의 시그니처 슈즈인 아디다스 카림 압둘 자바(아디다스 '스카이훅' )가 출시되었음 
빌 월튼: 월튼도 아디다스의 대표 선수로,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착용하며 경기에 나섰음

 
3. Nike

1984년 이전에는 나이키가 농구화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84년에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맺고 에어 조던 1을 출시한 이후에야 나이키는 농구화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가 되었다. 

 

1984년 이전의 브랜드별 NBA 스타

1980년대 이전에는 컨버스가 농구화 시장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많은 NBA 선수들이 컨버스에서 만든 '척 테일러 올스타'를 착용했습니다. 1980년대가 지남에 따라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특히 1984년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맺은 나이키는 농구화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영화 '에어'를 볼때 유용한 배경지식 3. _ 1984년 이후 마이클 조던의 개인사

 

1984년 나이키와 계약을 체결한 이후, 마이클 조던의 인기와 영향력은 농구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그의 1984년 이후의  MJ의 경력과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인 시즌 (1984-1985) :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한 첫 시즌부터 큰 화제를 모음. 평균 28.2 득점을 올려 NBA 신인왕에 선정됨.

 

에어 조던 1 (1985) : 에어 조던 1의 출시는 스포츠 의류 산업에 혁명을 일으킴. 피터 무어(매튜 마허 분)가 디자인한 이 신발의 인기와 이후의 계속된 혁신은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파트너십을 스포츠 계약의 전분야를 통틀어서 전설로 만듦.

 

득점왕 타이틀 : 조던은 커리어 통산 10번의 시즌 득점왕에 올랐으며, 1986-1987 시즌 최초로 득점 와 타이틀을 차지함

 

MVP 수상 : 마이클 조던은  NBA 최우수선수(MVP) 상을 통산 5번 수상함(1988, 1991, 1992, 1996, 1998).
 
3 연속 우승 트로피 (1991-1993) : 조던이 시카고 불스를 이끌고 처음으로 3연속 NBA 챔피언십을 이끌어냄으로써,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됨.

 

잠정 은퇴와 야구 선수 생활 (1993-1995) : 조던이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농구에서 잠시 은퇴하여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함. 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 마이너 리그 팀인 버밍엄 바론스에서 활약함.

 

NBA 복귀와 두 번째 3 연속 우승 (1995-1998) : 1995년 3월, 조던이 "다시 복귀합니다(I'm back)"라는 말로 NBA 복귀를 발표함.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시카고 불스를 이끌고 또다시 3 연속 NBA 챔피언십을 차지.

 

은퇴와 명예의 전당 입성 : 조던이 1999년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한 후, 2001년과 2003년 사이에 워싱턴 위저드와 잠시 선수생활을 이어감. 이후 최종 은퇴를 결정했으며, 2009년에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

 

샬럿 호니츠 소유권 : 2010년 마이클 조던이 샬럿 호니츠(전 샬럿 밥캣츠)의 주주가 되어, NBA 선수 중 최초로 리그 프랜차이즈의 주주가 됨.
 
1984년 계약 이후로도, 마이클 조던은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한 명이자 시대의 문화 아이콘과 성공한 기업가로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의 업적은 농구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습니다.
 
※ 마이클 조던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넷플릭스의 "더 라스트 댄스" 시청 추천드립니다.

 

그 외 알고 가면 좋은 토막 지식들

 
영화 도입부에 1984년도의 배경 스케치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휙휙 지나가서 다 생각나진 않지만 기억나는 데로 정리해 보면 음악 부분에서는 조지 마이클과 스티비 원더 등이 인기 팝 스타였습니다.
 
1984년도에는 고스터 버스터즈가 개봉한 해였으며 애플의 매킨토시가 출시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널드 레이건이 재선에 성공한 한 해였습니다.
 
또한 당시 나이키의 신발 제조 부분은 한국과 대만에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나라는 현재 반도체 강국이 되었습니다.(그 외도 머가 있었는데 생각이...)  
 
참, 영화 끝나고 바로 쿠키 영상 나옵니다. 참고하세요!!
 
이상으로 영화 '에어'의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사실 리뷰보다는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지식들 위주로 오늘은 포스팅했습니다. 영화 관람 계획이 있으신 분들에게 유익한 포스팅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중 유명한 한 구절을 남기면서 오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영화와 관련 있음). 이상 ChitChat Cinema였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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